두 젖꼭지가 마주 연결된 지시자는 생어머니 아래 누워 그 자신의 에너지 혈류를 드러내고 그것은 이내 익숙히 돌보아진다. 엄마가 텅빈 기둥이 되어 딸의 뱃속을 들춘다. 엄마가 젖은 빨래처럼 가히 널려, 마른 빨래처럼 바닥에 붙은 딸을 내려다 본다. 그는 신에게 기회를 주고 회복에 매달린다. 그렇게 수직수평으로 대칭된 두 몸. 아무래도 누운 모양이다. 아무래도 매달린 모양이다. 불구의 삶, 사랑의 말[1]을 고립시킨 두 사람은 손바닥에 헐떡이는 주머니 쥐를 움켜쥔다.
익숙한 악몽 속에서 찾아온 노래들은 잠자리에 둘러 앉아 과수면의 낮을 지킨다. 슬픈 자들의 목이 떨어지고 꿈결에 천사가 말한다. 어서 집으로 돌아오렴. 새치가 난 갓난아기가 추락한다. 그 아기는 순수하고 성실하다. 소생을 거부하는 몸, 불신의 말에 매혹되는 그들은 곧 불임의 모기, 우리는 황량한 숨결에 허벅지를 치켜 올린다. 상한 피만을 마시는 그 목젖으로 담궈낸 마취제는 목격자들 사이를 유동한다. 여기 이렇게 아프고 빈곤하고 사치스러운 몸들. 복수의 아리아는 이제 에테르의 아리아로 흐른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구역감이 들고, 단말마조차 허용되지 않도록 도핑된 에테르 칵테일. 매캐한 목넘김, 이 비린내 나는 잔. 붓고 편향된 눈을 감고 자랑스럽게 음미해보는, '이 기막힌 잠'[2]
새파란 거짓말이 한데 모여 또다시 약속된 순간을 만들고, 우리, 같은 광인을 위한 장르로서 - 포스트 레즈비언 오페라가 말도로르의 디바송을 관객에게 먹인다. 바퀴 달린 모스키토쥬스가 우리 사이로 황금 들판을 창안하네. 잃어버린 인연을 다시 맺기 위해.[3] 당신은 이제 삼켜봐. 발기된 오줌 뿜어지고 황금 똥구멍 뽑아지는 미래의 변소, 물 고인 이 수챗구멍의 장구벌레들을.